소란맘일상

‘수틀리면 빠꾸해’라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소란맘 2025. 4. 2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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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 딸이 얼마 전 조심스럽게 말했어요.
"엄마, 나 배우가 되고 싶어."

처음엔 그 말이 너무 멋지게 들렸어요.
화면 속 인물들이 되어 살아보고 싶다는 그 마음.
그 무대의 빛을 동경하는 아이의 눈빛이 참 예뻐보였죠.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한켠이 무거워졌어요.
'혹시 그냥 멋있어 보여서 그런 건 아닐까?'
'진짜로 사람의 이야기를 품고 싶은 마음에서 나온 걸까?'
어쩌면… 그 순간부터 저는 제 아이의 진심을 의심하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그런데 어느 날, 딸이 조용히 말했어요.
"엄마, 어릴 때 에이전시 다녔던 거 기억나?"
그때 함께 수업 듣던 친구들이 간간히 방송에 나오는 걸 보면,
그 시절이 자꾸 마음에 걸린대요.

"그땐 몰랐는데,
엄마가 시켜줄 때 열심히 할 걸 그랬어."
그 말을 듣는데… 가슴이 콕, 하고 아팠어요.
지금의 이 마음이 단순한 '아쉬움'인지,
아니면 진짜 '꿈'으로 자라난 건지

아이도 저도 아직 헷갈리는 중이에요.

게다가 지금은 고교학점제 시대잖아요.
선택한 과목 하나하나가 진로와 연결되고,
한 번 선택한 길에서 '빠꾸'가 어려운 구조죠.

사실은요.
진심을 말하자면,
폭삭 속았수다의 양관식처럼 "수틀리면 빠꾸하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괜찮아, 아니다 싶으면 다시 돌아오면 되지 뭐~”
그렇게 가볍게 말해주고 싶었어요.
근데, 그럴 수 없어요.
지금은 선택이 곧 책임이 되는 시대잖아요.
그래서 더 조심스러워져요. 더 무거워져요.

배우가 되려면 먼저 책을 많이 읽고,
사람을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한다고 조언해주신 선생님이 계세요.
그 말이 너무 와닿았어요.
그렇지, 연기는 겉모습이 아니지. 사람을 들여다보는 능력이 먼저지요.

예전에 개그콘서트 방청 갔다가
개그우먼 한 분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제 딸이 "배우가 되고 싶어요"라고 했더니,
그 분이 이렇게 말했어요.

"제일 어리석은 게 인맥 쌓겠다고 연극영화과 가는 거야.
공부 열심히 해서 너만의 이슈를 만들어.
그게 결국 너를 돋보이게 해."

그 한마디가 마음에 깊이 박혀 아직도 남아 있어요.

그래서 저는 딸에게 말했어요.
"연극영화과를 가고 싶다면,
중앙대, 한예종, 서울종합예술대학처럼 정말 실력 있는 곳으로 가야 해.
그게 아니라면, 엄마는 다른 과를 먼저 추천할게."

혹시 아이의 꿈을 막고 있는 걸까요?
아니요, 저는 아이가 자신의 꿈을 더 오래 안고 갈 수 있기를 바라는 엄마일 뿐이에요.
때로는 기반이 튼튼해야,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잖아요.

딸의 꿈을 응원합니다.
하지만 그 길이 더 단단하게 닿기를 바라기에,
오늘도 고민하며 한 발 물러서 지켜봅니다.

혹시, 나처럼 조심스럽게 아이를 응원하는 엄마들이 있다면...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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